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감행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전격 체포 작전은 미국의 ‘힘의 외교’ 정책이 절정에 달한 장면으로 꼽힌다. 지난해 이란 핵시설 정밀 타격과 시리아 IS(이슬람국가) 소탕 작전에 이은 이번 베네수엘라에 대한 ‘외과수술식’ 침공은 트럼프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은 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력을 불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작전의 명분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최대 매장량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통제권을 회복하고 서반구(미주 대륙)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지우려는 다층적인 셈법이 깔려 있다.
트럼프는 마두로 정권이 마약 카르텔과 결탁해 미국으로 펜타닐과 코카인을 유입시키고 있다는 ‘마약 테러’를 공식 명분으로 내세웠다. 미 법무부는 마두로를 마약 밀매 조직의 수괴로 규정한 뒤 5000만달러(약 723억원)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약 퇴치가 이번 작전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 내 펜타닐 사태의 주범은 멕시코 카르텔과 중국산 원료임에도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목표로 삼은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이번 작전이 베네수엘라 내 석유 통제권을 확보하는 한편,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려는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패권’ 확보와 ‘국내 정치적 국면 전환’을 동시에 노린 다목적 카드라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이번 작전의 배경에 ‘석유’가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미국의 거대 석유 기업들이 들어가 망가진 인프라를 고치고 돈을 벌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석유 수익의) 일부를 회수할 것”이라고 했다. J D 밴스 부통령 역시 “도난당한 석유는 반환되어야 한다”며 이번 작전이 단순한 체포 작전이 아닌 자산 회수 작전임을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3000억 배럴이 넘는 세계 1위 보유국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기업(PDVSA)의 부실 경영과 미국의 제재로 인해 현재 생산량은 전성기(일일 300만 배럴)의 3분의 1 수준인 100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미국이 “빼앗긴 석유를 되찾겠다”고 하는 배경에는 2007년 당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자원 국유화’ 선언이 있다. 차베스는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메이저 석유 기업들이 수조원대 투자한 자산을 강제로 몰수하고 쫓아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는 서방 메이저 기업은 셰브론(Chevron)이 유일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작전은 미국 석유 기업들이 세계 최대의 석유 보물 창고에 다시 접근할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권 교체와 함께 미국 기업들의 대대적인 복귀와 인프라 재건 투자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작전은 중남미에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과 러시아에 경고로도 분석된다. 특히 중국은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의 80%를 사들이고 있다. 여기에는 베네수엘라에 거액을 빌려준 뒤 원유로 상환받는 물량도 포함된다. 콜롬비아 싱크탱크 안드레스벨로재단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중국은 중남미 각국에 총 1360억달러(197조원)를 빌려줬는데, 이중 절반(620억달러)을 베네수엘라에 제공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무기를 대량 판매하는 등 군사적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모임)를 통해 남미에서 반서방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작전 이유에 대해 “우리는 좋은 이웃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은 외부 세력이 서반구에서 우리 국민을 약탈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 언론들은 이번 작전을 두고 신(新)먼로주의로 해석하기도 한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유럽 열강의 미주 대륙 간섭을 거부한 ‘먼로 독트린’에 ‘도널드 트럼프’를 더한 ‘돈로 독트린’이란 말도 생겨났다. 미국이 자신의 앞마당인 중남미 지역에 중국,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작년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미국은 서반구 우위를 회복하고 해당 지역 전역의 핵심적인 지리적 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한 먼로주의를 재확인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다음 타깃으로 쿠바와 콜롬비아를 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콜롬비아 대통령은 조심해야 한다” “쿠바는 실패한 국가”라고 경고했다.
☞돈로 독트린 (Donroe Doctrine)
1823년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먼로 독트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도널드’를 결합한 신조어. 트럼프 정부는 중남미를 미국의 앞마당으로 규정하고, 중국·러시아 등 외부 세력 차단을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